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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도서관/인문학, 철학

쇼펜하우어 철학자로서 성장 과정

by Crisi-Tunity 2022.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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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Pixabay / Welcome to All ! ツ

<독일의 긍지 괴테와 만나다 >
쇼펜하우어의 논문에는 그의 인식론에 대한 기초가 들어있었다. 괴테는 이를 읽고 그의 재능을 알아보았고 자기 밑에서 <색채론>을 연구할 것을 권했으며 장비도 지원했다.
괴테가 쇼펜하우어를 얼마나 존중했는지 알 수 있는 작은 에피소드도 있었다. 어느 파티에 괴테와 쇼펜하우어가 동석했고 쇼펜하우어는 사람과 어울리기보다 창밖을 우두커니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본 여성들은 파티의 뭇 남성들과는 다른 그의 모습을 보고 비웃었다. 이때 괴테는 그 여성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저 사람은 우리 모두의 머리 위를 훨씬 뛰어넘는 경기까지 올라갈 사람입니다” 쇼펜하우어는 이후 괴테와의 만남을 생애 가장 기쁜 사건 중에 하나로 뽑았다.

<인도철학을 접하다>
고대 인도철학은 19세기에 프랑스의 안케틸 듀페론이 라틴어로 번역하면서 유럽의 독자들도 새로운 세계를 접할 수 있게 되었고 쇼펜하우어는 프리드리히 마이어를 통해서 인도철학을 접하게 되었다. 그는 인도철학에서 모든 물질의 근본적인 동일성, 무가치성, 근원에서 발생한 현상계의 비참함에 대한 가르침을 얻었고 또 명상으로 처음 해탈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가르침을 받아들인다. 쇼펜하우어는 고대 인도 성전 <베다>를 읽고 세상에 가치를 두는 것을 버렸고 염세주의적 인생관을 확대해나갔다.

<색채론 : 독창적인 이념으로>
당시 괴테와 뉴턴은 색채론에 있어 대립하는 이념을 펼치고 있었고 슈펜하우어 역시 괴테와 마찬가지로 뉴턴과 대립하는 이념을 펼쳤으나 나아가 괴테와는 또 다른 그만의 독창적인 이론을 정립했다. 뉴턴은 모든 색은 태양광선의 일부라 했으며 괴테는 빛과 어둠이 함께 작용한 것이라고 했다. 슈펜하우어는 인간의 망막에 흰색을 감지하는 움직임이 있고 이를 통해 색을 인지한다고 생각했다. 뉴턴이 물리적, 과학적 이론을 펼쳤다면 쇼펜하우어는 생리학적인 이론을 펼친 것이다. 지금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세대는 뉴턴의 색채론을 지식으로서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쇼펜하우어가 색채심리학에 있어 선구자 역할을 했다는 것 만으로도 그 의미가 있다고 할 것이다.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 대표작을 간행하다>
1814년 쇼펜하우어 그의 나이 30세에 5년간 써온 철학 체계를 완성하며 <<의지와 표상으로의 세계>>를 발표한다. ‘모든 철학은, 세계는 의지의 자기인식이다’ 라는 이념으로 기존 철학을 서술한 것이 아니며 지금껏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고도로 응집된 사고가 담겼다고 자평했다.

<말이 길에 드러눕는다면 이유는 무엇인가?:헤겔과의 대립의 시작>
32세 쇼펜하우어는 대학 강사가 되기 위해 베를린 대학 철학과에 지원했고 시험강의를 하게 되었다. 이미 명성을 얻고 활동 중인 50세의 헤겔은 그 자리에서 '말이 길에 드러눕는다면 이유는 무엇인가' 에 대한 질문을 했고 쇼펜하우어는 당황했으나 그의 옛 스승 도움으로 무사히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이 일은 미래 쇼펜하우어과 헤겔사이를 예측할 수 있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개념에서 발생하는 사고와 직관적인 인식에 의한 사고의 대립이었으며 이는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논쟁거리이기도 하다. 
쇼펜하우어는 첫 만남에서의 수치심도 있었겠지만 헤겔이 궁중 대신들의 마음에 들어 그의 이념이 당국의 공인 철학같이 여기게 되면서 그에 대해 더욱 증오하게 되었다. 철학이 마치 권력 기관 아래 놓인 것과 같은 모양새였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 그것을 용납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탈리아 여행의 득과 실>
쇼펜하우어는 헤겔과의 만남 이후 우울감을 극복하기 위해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났고 자연 속에서의 사색을 통해 읽고 쓰는 것 외에 보고 경험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를 통해 그의 대표작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수정, 퇴고, 보충했다. 
또 피렌체의 미술품들은 연구하기도 하며 뜻깊은 시간을 보냈으나 여행을 마치고 독일로 돌아왔을 때는 건강이 악화되어 오른쪽 귀의 청력을 거의 잃은 데다 우울증까지 얻게 되었다.
쇼펜하우어는 그 당시 본인에 대해서 이렇게 적고 있다. ‘나는 점점 고독을 응시하는 눈을 갖게 되었고, 비사교적이 되어갔다. 나는 이 짧은 여생을 완전히 나 자신을 위해 바치기로 했다. 그리고 두 다리로 멀쩡히 걷는다는 사실만으로 나와 대등하다고 여기는 인관들과 되도록 사귀지 않기로 결심하였다.’

<베를린생활 : 위기를 기회로 >
쇼펜하우어는 좌절 속에서도 에스파냐어 공부에 집중했고 이미 익혀둔 그리스어, 라틴어, 프랑스어, 영어, 이탈리아어에 이어 에스파냐어도 익숙해졌다. 익숙해진 에스파냐어 실력으로 스페인의 도덕철학자 발타자르 그리시안의 <<신탁 요강>>을 자국어인 독일어로 옮기기도 했다.
신체적 불행과는 별개로 자신의 색채론을 라틴어로 옮긴 <<생리학적 색채론>>이 출판이 되는 등 좋은 일들이 생기기도 했다. 준비된 자에게만 주어지는 행운 같은 것이었다.


<프랑크푸르트 : 사상에 대한 시기적 구분>
독일에서 콜레라가 유행했고 쇼펜하우어는 독일을 떠나 프랑크푸르트에 정착했다. 경쟁자인 헤겔이 콜레라로 인해 사망하는 일이 있기도 했다. 프랑크푸르트는 그의 인생 72세를 통틀어 30년이라는 가장 긴 시간을 보낸 곳이다. 당시 프랑크푸르트는 영국인이 많이 사는 지역이었으며 독일의 지식인들은 영국을 사랑하는 사람이 많았기에 쇼펜하우어 또한 이 곳을 선택했다. 여전히 집 밖으로 나가는 일을 드물었으며 은둔생활을 이어나갔다.
쇼펜하우어는 당시 인생 전반의 사상의 구현에 대해 시기적으로 구분하기도 했다. 인간은 30세 또는 35세까지 세상으로부터 받은 인상에 의해 그 사람이 생각해 낼 수 있는 모든 사상을 탄생 시키고 그 이후로는 이것을 발전시켜나가는데 지나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최초의 40년은 ‘창조시대’이며 후반 30년은 ‘정비시대’ 라고 정의했다.

 

참고문헌 :  [세상을 보는 지혜]  쇼펜하우어 / 권기철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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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 세상을 보는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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