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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도서관/인문학, 철학

철학자 쇼펜하우어, 인생을 생각한다

by Crisi-Tunity 2022.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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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Pixabay / morhamedufmg

2022.10.20 - [인문학, 철학] - 쇼펜하우어 (성장과정)

<인생을 생각한다 : 부록 간행과 성공>
쇼펜하우어는 그의 대표작인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의 부록에 해당하는 <<인생을 생각한다>>를 간행했다. 부록인 뿐이라고 자평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출판물 가운데 처음으로 베스트셀러가 되는 세속적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이 성공으로 그의 사상은 널리 퍼져나가기 시작했고 오늘날에도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많이 읽히고 있다.
<<인생을 생각한다>>에는 삶의 허무에 대하여, 자살에 대하여, 여성에 대하여, 종교에 대하여, 등 여러 가지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인생 전반에 걸친 다양한 현실 문제에 대하여 그의 날카로운 견해가 담긴 ‘철학소론집’ 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작품의 내용 중 6장 ‘삶의 예지’는 가장 많은 분량의 내용이 담겨있는데 ‘넓은 의미에서 인간은 일생을, 처음 40년 동안은 인생의 본문을 쓰는 시기이고, 그 다음 30년은 이 본문에 대한 주석을 달아가는 시기이다’ 라고 표현하며 그의 철학을 알기 쉽기 설명한 훌륭한 입문서임을 알 수 있다. 30대 젊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본질적인 것에 대하여 사고 하지 않는 사람은 젊음이라고 불릴 가치가 없다고 하며 젊음의 사상적 순수함에 대하여 강조했다.
쇼펜하우어는 운명의 장난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거나 사악한 상황에서 빠져나오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고뇌 속에서 어떻게 고통을 견딜 수 있나, 인간의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 진정한 행복은 무엇인가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는 먼저 만물의 허무함, 이 세상의 꽃이라 불리는 모든 것들의 공허함을 확신했다. 그리고 여유롭게 웃으며 이 세상의 거짓들을 내려다볼 수 있는 마음의 안정에 이를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다.
고뇌와 허무로 가득 찬 세상에서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는 안정적인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고독을 견디고 나아가 고독을 사랑하는 정신적 경지를 체득해야만 한다. 바로 여기에서 뒷날 니체, 토마스 만이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고독한 초인’이라는 사상의 싹이 움트고 있었다. 쇼펜하우어는 이 책에서 집요할 정도로 고독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다. 


<바그너 : 쇼펜하우어를 동경한 음악가>
1854년 바그너는 자신의 악극시 <<니벨룽겐의 반지>>에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라는 자필헌사를 보냈다. 평생 모차르트와 롯시니를 열렬히 선봉했던 쇼펜하우어는 바그너에게 관심이 없었고 바그너의 헌사에 대해서 답변 또한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그너는 그의 무관심조차 동경했다. “내가 쇼펜하우어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받았는지 그가 전혀 모르고 있다니 얼마나 근사합니까!” 바그너는 그의 무관심조차 이렇게 역설적으로 표현했다. 바그너의 작품을 들여다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는데 <<니벨룽겐의 반지>>는 ‘쇼펜하우어의 모방작’이라며 그즈음 지식인들에게 비판받곤 했다. 하지만 <<니벨롱겐의 반지>>는 바그너가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알기 전에 완성한 것으로 그만큼 사상적으로 두 사람의 사상이 얼마나 닮았는지 알 수 있다.

<키에르케고르 : 쇼펜하우어와 같이 근대문명을 비판한 선구자>
덴마크의 사상가 키에르케고르는 1853년 자신이 죽기 2년 전에 처음으로 쇼펜하우어의 책을 읽었다. 근대에 들어와 유럽의 정신은 ‘이성’에 지배를 받게 되었다. 근대과학을 바탕으로 이성을 통해 스스로를 전능하다고 판단하는 세태에 대하여 키에르케고르와 쇼펜하우어는 공통적으로 모든 현상에는 절망과 고뇌라는 진실이 담겨있으며 그렇기에 세상은 이성이 아닌 의지로 바라보아야 한다며 근대 문명을 비판했다.


< 이 빛이 영원하기를 : 목표에 이르다>
쇼펜하우어가 70세가 되어가던 무렵 이제 그는 외부 세계로부터도 인정을 받는다. 1856년 라이프치히 대학 철학과에서는 ‘쇼펜하우어 철학의 논술과 비평’이라는 주제를 가진 논문을 공모했다. 1857년에는 그의 철학이 처음으로 강의로 채택되었다. 그의 작품 몇 권은 영국에 이어 프랑스에서도 번역되었다. 이탈리아에서는 <<쇼펜하우어와 레오파르디>>라는 비교론이 출판되기도 했다. <<인생을 생각한다>>도 꾸준히 판매되었으며, 독일 곳곳에서 찾아온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게 되었다.
‘진리만이 온갖 고통 속에서도 살아남는다. 진리는 영원히 불멸하는 다이아몬드다’  70세 쇼펜하우어는 자신의 생일에 이 문장이 새겨진 잔을 받고 감격했다고 한다. 베를린 왕국과학 아카데미 회원 권유에는 딱 잘라 거절했다. 젊은 시절 헤겔이  철학과 사상으로서 왕국의 일을 하던 것을 비판하던 그의 진심은 변하지 않았던 것이다. 
오랜 기간 강단 철학자들의 묵살, 간행 작품의 연이은 판매 부진 그 세월을 견뎌온 그에게 드디어 석양이 비춰오고 있었다. 당시 그의 저서 서문에 이런 문구가 있었다. ‘하루 종일 달려 해질녘 목적지에 닿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이 인용 문구에 이어 본인의 생각도 밝혔다. ‘나도 이제 목적지에 이르렀다. 생의 마지막 단계에 나는 나 자신이 해온 작업이 빛을 발하는 것을 내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었고, 만족을 느꼈다. 바라는 게 있다면, 이 빛이 영원하길’

<마지막 행보 : 염세주의 안에서의 인간애>
쇼펜하우어는 폐렴으로 생을 마감했다. 1860년 9월 21일 금요일 아침이었으며 그의 나이 72세였다. 그의 마지막을 발견한 주치의는 평온한 얼굴에 고통이 없어 보였다고 전했다.
그가 생전에 희망했던 것과 같이 묘비에는 날짜도 연호 없이 ‘아르투르 쇼펜하우어’라는 이름만 간결하게 적혀졌다. 그리고 묘비 위치에 대해서는 “어디라도 괜찮네. 내가 어디에 있든 사람들이 나를 찾아낼 테니까“라고 말을 남겼고 그의 친구들은 프랑크푸르트 시립묘지를 선택했다. 그의 생가와 기념비 등은 전쟁으로 사라졌지만 그의 무덤은 140여년 지난 지금까지도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그의 묘비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지극히 평범하게 울타리 너머로 지면에 박혀 있어 좀처럼 찾기 어렵다고 한다.
그의 재산은 1848년~1849년 폭동 및 반역 운동 때 독일의 법 질서를 유지하고 재건하기 위해 싸우다 부상 입은 프로이센 병사들과 유족들에게 남겨졌다. 국가, 위선자, 체제에 분노했던 그이기에 그의 유산은 오직 희생을 당한 각 개인을 위한 것이었다고 해석된다. 심연까지 염세주의는 아니었던 쇼펜하우어의 마지막은 인간애를 표출하는 것으로 마감되었다.
쇼펜하우어는 그 답게 생을 마감했고 그의 저서들은 오늘날 현대인에게도 많은 의미를 주고 있다.

 

 

 

참고문헌 : [세상을 보는 지혜] 쇼펜하우어/권기철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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